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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선의 섬유 주얼리 및 오브제

매년 화려한 모습을 자랑하는 작은 공작선인장입니다.

저에게는 공작 선인장화분이 2개 있습니다.  하나는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키우시던 것으로 제가 키우기 시작한게 벌써 7-8년 된 제법 큰 선인장이구요, 다른 하나는 1000원짜리 작은 화분을 사서 10여년 키운 선인장입니다. 그런데 제가 사서 키운 선인장은 매년 얼마나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지요.. 심지어 일년에 2-3번씩 꽃을 피우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어머니로부터 받은 이 선인장은 그저 한 두송이 피다 말다 그렇게 7-8년이 지났어요. 이상하다. 이상하다하면서도 제가 어찌할 수 없이 그저 물이나 열심히 주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올해...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어요. 지난 4월 초. 겨우내 아파트 안에 갇혀있던 화분들을 베란다로 내 놓았습니다.

그리고 5월..고목같던 선인장에 꽃송이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이 선인장 꽃은 오전에만 이렇게 꽃이 핍니다. 오후가 되면 꽃송이들이 입을 다물어요..

꽃이 만개할 때까지 블로그에 올리는 것을 미루려했는데.. 너무 신기하고 신도 나고.. 그래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저에게는 하나님의 싸인같아요. 엘리야에게 보여주신 구름 한 조각.. 그런 주님의 위로이며 앞을 향해 달리라고 하시는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주님, 당신의 뜻을 이루시옵소서!!! 그리고 내가 달려갈 방향과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알게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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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edidiah Trackback 0 Comment 0

오메르 카운트 다섯번째 주 주제는 호드 Hod, 겸손이다. 또한 감사란 의미도 있는 히브리어이다. 감사와 겸손이 같은 어근을 갖는다는 사실이 놀랍다.  호드 중의 헤세드, 겸손의 사랑이다.

인내가 삶에서 엔진이라면 겸손은 그것의 연료라 할 수 있다. 훈련, 절제(게부라)가 헤세드를 주는 것이 초점이라면 호드는 네짜흐(인내)를 주는 것이 목적이다.  


겸손은 연약함과 자존감의 결여와 혼동되어서는 않된다. 겸손은 우리를 순복함으로 이끈다. 겸손은 자신의 가치와 힘을 명확하게 깨닫고 그것들이 나 자신의 것이 아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겸손은 단순히 나 자신의 필요의 충족이나 만족함보다는 높은 목적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얼마나 작은지 깨닫는 것이며, 자신이 얼마나 커질 수 있는 깨닫게 한다.  겸손은 능동적이다. 어떤 존재의 상태가 아니라 그것이 비록 고요함 가운데 있더라도 상호작용이다.

겸손은 화려하거나 카리스마가 넘치는 그런 느낌은 아니다. 오히려 무언가 초라함이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또한 겸손은 모든것을 감싸안아주는 따뜻함이 있다. 마치 색바랜듯한 이 꽃잎처럼...

겸손은 사랑을 가져온다. 왜냐하면 겸손은 자신을 넘어서서 일어날 수 있는 능력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기 때문이다. 


나에게 겸손이 있는가? 나에게 이런 따뜻함이 있는가? 내가 의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겸손의 옷을 나에게 입혀 주셨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에 힘입어 오늘도 아는 주님의 겸손의 옷으로 , 주님의 보혈로 나를 감싸주시길 기도한다.


사랑을 가장한 오만은 자기 사랑이다. 심지어 다른 사람을 자신의 일부분으로 만드는 것과 자기 자신을 확장하는 것, 그것은 자기 사랑이다.


매일 이 부분으로부터의 결별을 선포한다. 바울이 '나는 매일 죽는다'고 선포한 것과 같이 나는 매일 죽어야만 하루를 버틸 수 있다. 그러나 매일 죽는 것조차 나에게는 버겁기만 하구나...

꽃송이 하나에 암술과 수술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러나 또한 이들이 이렇게 가까이 모여 있다 하더라도 나비와 벌들의 도움이 없다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때문에 꽃잎은 아름다운 색과 향기로 나비와 벌들에게 길을 안내하며 암술과 수술을 돕고 있다. 어느 것도 혼자 설 수 있는 것이 없다.

나의 겸손은 나로 하여금 더 사랑하고 주도록 하는가? 아니면 나를 제한하고 억제하는가? 나는 겸손하고 행복한가, 아니면 겸손하고 불행한가?


위의 꽃송이에서 볼 수 있듯이.. 모든 것은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들이 할일을 그저 묵묵히 이루어내고 있다. 그것이 겸손이다. 나는 어떤가? 나는 아직도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하나님에게조차.. 비록 내가 의식하고 행하지는 않더라도 나의 개인적인 아픔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빈도수로 보아.. 내 안에는 아직도 주님앞에서의 겸손함이 없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게서 이미 나에게 허락하신 겸손을 누리게 하소서. 겸손함으로 행복해지기 원하오니 주여, 나에게 주님의 겸손의 옷을 입혀주소서.


오늘의 적용 : 하나님의 인정과 겸손을 가지고 기도하기 전에 약간의 자비를 베풀라. 그것이 당신의 기도를 더욱 향상시킬것이다.


어떤 자비를 누구에게 베풀라는 의미일까? 오늘은 일단 나 자신에게 자비롭고 싶다. 그래도 어제보다는 주님께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선 모습에.. 최소한 그러기 위해 몸부림하는 모습에 자비롭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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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메르 카운트 28일째-Malchus of Netzach 네짜흐 중의 말쿠트, 인내중의 통치권, 인내의 통치권이다.

통치권 또는 주권.말쿠트는 다스린다는 의미의 히브리어이다. 이 단어에서 떠올릴 수 있는 그림은 무엇일까? 하늘.. 구름..아마도 주님의 주권을 가장 잘 상징하는 그림이 아닐까?

통치권은 인내의 주춧돌이다. 인내는 인간 영혼의 위엄에 대한 영향력을 입증하고 증거하는 행동이다.


-첫째 통치권과 인내라는 단어를 동시에 생각한다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야훼 하나님이다. 그 분의 인내와 주권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내 모습을 상상할 수도 없다. 주님, 당신이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 우아한 백조의 자태!! 그러나 이 자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물 밑에서 빠르게 물살을 가르고 있는 다리가 있다는 것.

나의 인내는 위엄이 있는가? 그것이 나에게 최선을 다하게 하는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나는 왕이나 여왕처럼 행동하고, 내 머리를 들고 자랑스럽게 걷고 나의 하나님이 주신 힘 안에서 자신감있게 행하는가? 아니면 두려움 속에서 겁을 먹고 몸을 웅크리고 위축되는가?


-우!!! 오늘 나에게 너무 큰 힘을 주는 질문이다. 머리를 들고 여왕처럼 우아하고 자신있는 모습으로 .. 약간의 미소도.. 왜냐하면 주님께서 공급하시는 세상이 알 수 없는 힘이 내 안에 있으니까..

무언가 팽창하기 위한 에너지!!! 무언가를 위한 도약에 필요한 에너지다.

오늘의 적용 : 위엄의 요인을 위해 싸우라.-하나님이 주신 힘 안에서 자신감있게 행하는가? 인내중에 위엄을 갖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말씀이다.


주님의 언약을 붙들지 않고는 이 힘을 얻을 수 없다. 싸우라!!! 어떻게?  필사적으로 말씀 안에 잠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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